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여성의 권리 옹호 (문단 편집) == 반응 == 남성들이 하얀 [[가발]]을 쓰고 다니던 그 옛날 그 시절에 출간된 본서는, 과연 독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켰을까? 저자의 전기 작가 재닛 토드(J.Todd)에 따르면, 출간 이후 처음 5년 동안 3,000부, 이후 극히 적은 부가 팔릴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후로 한동안 본서는 아예 역사 속에서 잊혀져야 했다. 그러나 출간 직후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번역되고, 초창기 미국 도서관마다 비치되어 있었던 등 서구 세계 지식인들의 주목을 받는 등, '''일반 대중과는 달리 지식인 계층에게는 출간 당시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물론 본서가 당대 사람들의 생각과는 너무나 크게 달라지는 점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으므로, 심지어는 [[무정부주의]]자였던 남편 고드윈조차도 본서에 대해서 "우리가 아니라 훗날의 평가를 기다리겠다" 고 기약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고드윈의 이 발언 때문에 조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하니 아이러니한 일. 한길사 판본의 손영미 역자에 따르면, 본서는 그나마 그 '''지식인 계층에게도 매우 극단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부정적인 반응의 경우, 토머스 테일러(T.Taylor), 메리 헤이스(M.Hayes), 리처드 폴웰(R.Polwhele), 벤저민 실리먼(B.Silliman) 등이 저자를 조롱하고 비난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테일러의 경우 아주 펄펄 뛰면서 저자에 대해 비아냥거리고 비난을 퍼부었다고. 물론 지식인들 중에는 긍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아서, 당장 저자의 남편인 [[윌리엄 고드윈]]을 비롯하여 [[조지 엘리엇]], [[엠마 골드만]], 로버트 사우디(R.Southey) 등이 저자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결국 그 정도뿐, [[19세기]] 들어서 그대로 잊히는가 싶던 본서는 [[대서양]] 건너편에서 다시 부활했다. 1840년대 이래로 [[미국]]에서 노예제 폐지 운동이 벌어지는 동안, 세네카 폴스 회합을 주도했던 엘리자베스 스탠턴(E.C.Stanton) 등이 저술한 《History of Woman Suffrage》(1881)에서 '''처음으로 본서가 등장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본서를 가리켜서 '고결한 정신과 진정으로 순수한 지혜의 말' 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렇게 제1물결 페미니즘에게 빛을 보는가 싶던 본서는, 20세기 초반에 서구 지성세계를 '''[[정신분석학]]이 지배하면서 다시 폄하의 대상이 되었고,''' 저자는 손쉽게 병리화되었다. 그 이후로 [[1974년]]에 영국의 역사학자 리처드 코브(R.Cobb)가 저자에 대해 신랄하게 조롱하는 서평을 쓰는 등, 부정적인 평가는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본서의 존재를 깨달은 '''서구 페미니스트들과 여성 작가들'''이 꾸준히 저자를 지지해 주었으며, 그 사례로는 [[버지니아 울프]], 앨리스 웩슬러(A.Wexler), 에이드리언 리치(A.Rich) 등이 있다. 한길사 판본의 뒤편에 실린 비평 자료들은 학계의 관점에서 본서를 평론하는 다양한 단행본들과 [[핸드북]], [[논문]]들의 풀 텍스트를 완역해 놓고 있다. 역자의 고생을 고려해서라도(…) 여기에 각각의 자료들을 요약해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엠마 라우션부시클러프(E.Rauschenbusch-Clough)[* Rauschenbusch-Clough, E. (1898). A study of Mary Wollstonecraft and the right of woman. London.] : 저자의 교육관은 상당히 사회주의적이며, 엘리트주의 교육관에 반대하는 성질을 갖는다. 본서는 전통적 가족 체계를 공격하는 게 아니며, 오히려 이를 고상하게 만들어주는 조언이라 할 수 있다. 즉, 저자는 모성을 축소시키는 게 아니라 모성을 위대하게 만들고자 한다. * 캐럴린 코즈마이어(C.Korsmeyer)[* Korsmeyer, C. (1976). Reason and morals in the early feminist movement: Mary Wollstonecraft. In C. Gould, & M. Wartofsky (Eds.), Woman and philosophy: Toward a theory of liberation. New York.] : 당시에는 여성이 비합리적 존재라는 인식이 있었기에, 당시의 페미니즘은 여성을 비합리적이게 만든 것이 바로 교육의 부재 때문이라고 말해야 했다. 현대에도 스티븐 골드버그(S.Goldberg) 같은 사람들은 여성은 비이성적이라 주장하므로, 이에 대한 답변으로서 본서는 아직 유효하다. * 레지나 제인스(R.M.Janes)[* Janes, R. M. (1978). On the reception of Mary Wollstonecraft's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 The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39(2), 298.] : 본서에 대한 초기 반응은 흔히 알려져 있는 것보다 의외로 훨씬 호의적이었다. 당시 보수주의자들은 본서에 대해 오히려 침묵했고, 진짜 가혹한 비난은 6년 후인 1798년 이후에 나타났던 것이다. 하지만 [[안티페미니즘]] 측에서는 여성 해방의 '끔찍한' 결과물이라며 본서를 비난하려 했고, [[페미니즘]] 측은 그쪽대로 여성 해방에 대한 [[백래시]]의 스토리텔링을 해야 했기에 이런 호의적 태도에 관심이 없었다. * 엘리사 구럴닉(E.S.Guralnick)[* Guralnick, E. S. (1977). Studies in Burke and his time. Texas Tech Press.] : 본서는 페미니즘 서적이기에 앞서서 급진적인 성격을 갖는 정치철학 서적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이는 여성 권리의 옹호를 위해서는 먼저 정치학적인 급진성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모이라 퍼거슨(M.Ferguson) & 재닛 토드(J.Todd)[* Ferguson, M., & Todd, J. (1984). Mary Wollstonecraft. Boston: Twayne Press.] : 본서는 [[영국]]에서 발흥한 [[계몽주의]]적 조류와, 고학력 여성들로 구성된 블루스타킹스(Bluestockings) 사상가들의 출현, 그리고 [[프랑스]]의 국민교육 논의, 루소의 《[[에밀]]》 출간을 배경으로 한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본서는 합리주의와 기독교 낙관주의를 융합하여 대응하고 있다. * 미치 마이어스(M.Myers)[* Myers, M. (1978). Mary Wollstonecraft's letters written in Sweden: Toward romantic autobiography. Studies in Eighteenth-Century culture, 8, 165-185.] : 본서는 당시 치열했던 "개혁이냐 파멸이냐" 의 [[종교]]적 논쟁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시기는 도덕학자들과 에세이스트들의 수많은 문헌들이 실제로 여성 교육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을 때였다. 본서는 여성의 종교적으로 이상적인 자리를 가사노동으로 한정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 여성을 그리려 하였다. * 메리 푸비(M.Poovey)[* Poovey, M. (1985). The proper lady and the woman writer: Ideology as style in the works of Mary Wollstonecraft, Mary Shelley, and Jane Auste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 본서는 저자 자신이 스스로의 여성성, 감정, 욕망, 육체성을 부정하면서 쓰여졌기 때문에, 본서에서 저자가 여성들을 비판하는 것은 결국 저자 본인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과도 같다. 이처럼 여성의 한계에 대한 저자의 부정은 저자 개인의 좌절된 지적 욕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의 성욕에 대한 도덕적 거부감, 그리고 여성 집단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기 위해 중성적 화자를 취하는 데에서도, 저자가 자신의 여성성을 부정하는 경향이 감지될 수 있다. 한편 이해진(2014)[* 이해진 (2014). '여성'에서 '인간'으로, 주체를 향한 열망: 임윤지당과 울스턴크래프트 비교 연구. 한국여성학, 30(2), 89-125.]의 경우 조선시대 여성 성리학자였던 임윤지당과 저자의 비교를 시도한다. 여기서는 본서와 《윤지당유고》 를 서로 비교하는데, 두 문헌 모두 '''여성이라는 특정성 및 객체로서의 지위에서 벗어나 인간이라는 보편성 및 주체로서의 지위로 도약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고 평가하고 있다. 즉 본서가 여성을 남성처럼 만들고자 할 때, 이는 여성의 '남성화' 라기보다는 여성의 '인간화' 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